안상호의 친일 성향이 진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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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별빛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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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7대 총독 미나미 지로
얘들아 이제부터 조선인들도
일본식 성씨로 바꾸고
신사도 참배시키자.
조선어도 못쓰게하면 더 좋겠지?
조선총독부 내 일본인 관원들
예?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죠?
왜긴 왜야!
조선인들도 천황폐하의 신민이니 당연히 내지(일본)와 같은 방식의 성을 쓰고
신사도 참배해야지.
그거 본국(일본)에서 내린 지시인가요?
아닌데? 내가 조선총독인데 내 맘대로 하는거지
(단발령 때문에 의병이 일어난 나라인데 성을 바꾸라고? 미친놈인가...)
일제강점기 후반의 대표적인 민족 말살 정책인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정책은
의외로 조선총독부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랬던 것은...당연히 아니고
당시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을 막 개시한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민감한 정책을 꺼내면
조선인들이 극심한 반발을 일으킬게 뻔한 상황.
조선총독부 관원들은 전쟁에 모든 역량을 동원할 시기에
미나미 지로의 정책을 집행했다가는
식민지의 치안을 불안하게 만들고 행정력을 낭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발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미나미 지로는 즈그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강요, 조선어 말살 정책을 차례로 실시했다.
대표적인 친일파 윤치호마저도 일기장에
'미나미 지로 짤릴듯 ㅉㅉ'라고 적을 정도
요약하면 일제강점기 후반에 있었던 미나미 지로의
강력한 내선일체 정책은 총독부와 본국마저도 우려한 급발진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상호는 1920년이 되기도 전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일본옷을 입고 본인 가족은 일본말만 사용했다.
매운 음식은 못먹다는 것으로 보아 음식조차 조선의 것을 거부한 듯하다.
거기다가 장녀의 이름은 안견자인데 자(子)로 끝나는 이름은 일본식이다.
(노년층 할머니 중에 이름이 '자'로 끝나는 분들이 많은 것은
창씨개명 정책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안상호는 이미 일제강점기 초반에 자녀 이름을 일본식으로 한것이다!)
그렇게 그는 1910년대에 본인 일가를 일본식으로 동화했다.
조선인과는 상종도 않겠다는 의지는 덤
안상호는 일제강점기 후반도 아니고 초반에 이미 '내선일체'의 모범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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